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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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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활약했던 가수를 살펴보면 이 시대를 대표한 가수 조용필을 비롯해 발라드의 변진섭, 이문세, 트로트의 주현미, 록의 이승철, 시나위, 들국화, 가요제 출신의 이선희 등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며 가요계를 화려하게 수놓았습니다. 음악 시장이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CD가 사라져 가고 있지만 80년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CD는 디지털 시대를 열어준 '꿈의 디스크'였습니다. CD 시장이 확산되고 플레이어가 보급되기 시작되어 가기 시작할 때쯤 기존 레코드였던 LP의 폐기 문제 등 LP에서 CD로 교체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흐른 지금 '음원의 등장'으로 CD가 LP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걸 생각하면 음원은 어떤 매체에 의해 교체될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80년대 한국 음반 시장에 또 다른 지각 변동이 있었는데 바로 해외 직배사 음반사의 국내 상륙이었습니다. Sony, EMI, BMG 등 해외 음반사들의 국내 진출은 가요 시장을 거의 잠식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현재 가요 시장은 한국 가요의 눈부신 발전으로 그 우려를 잠재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80년대 활약한 가수들

80년대 음악은 각종 가요제를 통해 배출된 그룹 및 가수들의 활동과 가수 조용필을 비롯해 가요제와 무관한 가수들의 활동이 어우러져 질적 향상을 이루면서 기존 음반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해외 음악 비중을 국내가요 시장으로 대체하게 되는 결정적 동기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음악적 수준과 더불어 기획과 홍보에서 전문화된 기획사들의 역할도 한몫했음을 알 수 있는데, 기획과 홍보 그리고 생산과 유통이 구분되면서 나타난 효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음악을 살펴보면 가수 조용필의 등장으로 잠재된 우리 음반 시장의 규모를 알 수 있었으며 동아 기획, 뮤직 디자인 같은 차별화된 음악 공급처의 활발한 기획 활동 또한 우리 음악을 구매하는 소비층의 폭을 넓히는데 일조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음악의 장르도 발라드, 트로트, 포크, 록, 댄스 등 다양했습니다.
80년대를 대표적인 가수들을 살펴보면 다양한 음악으로 한 시대를 대표하던 조용필을 비롯해 발라드의 이광조, 이문세, 변진섭, 조덕배, 전영록, 김범룡, 양수경, 정수라, 민해경이 큰 활약을 했습니다.
트로트계에서는 현철, 최진희, 김수희, 주현미, 심수봉 등이 주목을 받았고 댄스 음악계에서는 소방차, 박남정, 김완선, 나미 등이 대중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포크 음악에서는 송창식, 양희은, 김광석, 임지훈, 해바라기, 남궁옥분, 록그룹으로는 사랑과 평화, 이승철의 부활, 이치현의 벗님들, 시나위 그리고 조금은 언더를 지향하던 들국화, 김현식, 한영애, 신촌 블루스, 박학기, 시인과 촌장, 신형원, 김현철, 푸른 하늘 등이 활동하였네요.
가요제에서 배출한 가수들을 살펴볼까요? 김수철과 작은 거인, 이선희, 조하문, 구창모, 배철수, 홍서범, 이용, 이상은, 이상우, 유열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가수들이 활동하였습니다. 아이돌 가수들의 활동도 이때 시작되었는데 이지연을 비롯해 박혜성, 김승진 등도 이때 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음반의 세대교체 'LP'에서 'CD'로

에디슨의 발명품인 소리 기록 장치는, SP(Standard Play)를 거쳐 LP(Long Play)로 발전하였으며 80년대 초반 CD(Compact Disk)로 불리는 광 메모리 미디어에 자리를 내 줄 때까지 오랜 세월 소리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광 메모리 기술은 일본의 소니와 네덜란드의 필립스가 70년대 중반부터 개발을 시작하였으며 80년대 들어서 두 회사는 기술 표준화에 합의하게 되고, 82년도에는 CD 및 CD 플레이어의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국내에서는 86년 글로벌 필름 메이커인 SKC가 최초로 생산 시설을 도입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하지만, 낮은 플레이어의 보급률과 일부 음반사의 경계심에 더해, 아날로그 음악에 길들여진 소비자의 편향적 평가도 시장의 확산에 어려움을 더해 주었습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음반 업종은 중소기업 고유 업종에 속해 있었으나 수백억에 달하는 초기 설비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음반사는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결국, 대기업이 투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이는 훗날 제조가 아닌 음악의 제작에 대기업들이 진출하는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국내 시장의 어려움 속에서 SKC는 해외 시장의 주문 생산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었으며 국내 LP 시장을 대체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했습니다. 일본이 CD 시장 점유율을 50%로 올리는데 4~5년이 걸린 반면 우리는 아마도 그 두 배 가까이 걸리지 않았나 기억됩니다. 90년대 초 중반 CD 제조 설비 가격은 많이 낮아졌고 기존 음반사들은 앞 다투어 제조 설비를 갖추면서 CD 시장은 본격적으로 확산되었고 플레이어의 보급 또한 그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음반시장의 골칫거리' LP 레코드
그러나 이때쯤(90년대 중 후반) 음반 업계는 시장에서 복병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전국 도소매점 (그 당시 약 8000곳 이상으로 추정)에 출고되어 있던 천문학적 숫자인 LP의 처리 문제였습니다. 어느 음반사의 경우 그날 출고된 CD의 판매량보다 반품으로 돌아온 LP의 숫자가 많아지고 로열티를 받던 기획사와 가수들의 로열티 정산 문제를 비롯해 반품된 LP를 폐기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20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음악 파일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CD의 운명 또한 LP와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메이저 음반사'들의 국내 진출

88년 시작된 메이저 음반사들의 국내 진출도 커다란 지각 변동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 배급도 UIP(United International Pictures)를 선두로 직접 배급을 시작하였는데 이때 국내 영화 산업의 미래를 우려한 일부 영화인들은 상영관 안에 뱀을 풀어놓는 등 거센 반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음반 직배사들은 거의 무혈입성을 했다고 기억됩니다.
이미 시장 점유율에서 외국 음악은 국내 음악 시장을 추월하기 시작했으며 90년대 중반까지는 그 여세를 몰아 전체 음반 시장의 60~70%까지도 점유율을 높이고 있었지만 이후 국내 음악에 밀리기 시작, 지금은 국내가요 시장이 80% 정도가 아닐까 추정되기도 합니다.
외국 음반사들의 무차별 공세!!
이때 들어온 음반 직배사로는 88년 처음 상륙한 EMI는 계몽사와 Polygram은 성음레코드와 합자회사로, Sony, WEA, BMG는 직접 배급 형태로 시장 진입을 하였으나 국내음악보다는 해외음악 배급을 우선하였습니다. 이는 국내의 정서나,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방송 홍보의 의존도가 높은 국내 프로모션 환경에 접근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체 제작보다는 Advance(선지급)를 통한 기획사들의 음반 유통 대행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데 이는 90년대 등장하는 또 다른 거대자본인 대기업의 시장 참여와 함께 또 다른 구도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미 직배사의 출현은 국내 음반사들의 라이센스 시절부터 예견되었으며 국내가요 시장을 거의 잠식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초기의 우려에 비해 현재 가요 시장은 국내 기업들의 노력과 한국 가요의 눈부신 발전으로 그 우려를 잠재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직배사의 자본 활용이 국내 음반 산업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하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며 우리 음악의 글로벌화를 위한 노력과 다국적 기업인 직배사를 통해 우리 음악이 아시아를 뛰어 넘을 방법을 고민하는 것 또한 당면한 문제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LP 레코드에서 CD로 교체될 때 여러분이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 있으신가요? 의견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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