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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차트

한국의 가요, 팝 음악사를 차트와 컬럼으로 즐기는 국내 유일 시대별 차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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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년도
1979년도 한국 가요史 차트 바로보기

최고 프로 뮤지션들이 만나 결성한 사랑과 평화의 데뷔곡 '한동안 뜸 했었지'가 이 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신진 그룹사운드가 대거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고 지난해에 이어 캠퍼스 그룹사운드의 인기도 계속되었습니다. 배철수의 활주로와 구창모의 블랙테트라가 특히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편, 당시로써는 이례적이었던 여성 보컬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그룹사운드가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들고양이들'과 '김트리오'가 가장 돋보였던 그룹입니다. 한국 발라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광조도 이 해 '나들이'란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신나는 로큰롤 리듬에 빠져봐!!

한국 펑크 록 밴드의 전설 '사랑과 평화'
그룹 사랑과 평화를 말할 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전설적인 그룹입니다. 70년대 후반 외국 음악에서나 들어 봄 직한 Funky 리듬을 도입하여 발표했던 노래 '한동안 뜸 했었지'. 78년도 발표된 1집 수록 곡이었던 이 곡은 리듬의 과감성도 화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연주 실력에 대한 평가가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이후 발표된 '장미'를 비롯해 온몸으로 노래하던 이남이의 '울고 싶어라' 등을 발표하며 전설적 그룹임을 다시 증명 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잦은 맴버 교체로 인하여 어려움도 많았으나, 현재까지도 이철호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가 TV에서 이철호가 부르던 'Otis Redding'의 'I`ve Been Loving You Too Long'을 들으며 정말 Soul(흑인음악) 음악을 감동적으로 소화해내는 가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음악은 70년대 초반 무교동 근처로 기억되는 어느 클럽에서 장발과 목 높은 구두(그 당시엔 캉캉 구두로 표현)로 젊음의 우상이었던 라스트 찬스의 노래로 들으며 감격했던 필자에겐 또 다른 감동이기도 했습니다. 사랑과 평화에서 활동하던 김명곤, 송홍섭은 80~90년대 한국 대중가요발전에 또 다른 기여를 하게 되는데 편곡의 비중이 절대적이던 그때, 이들의 편곡 활동은 한국 가요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좌측부터) 사랑과 평화의 이남이와 이철호
그 외 인기 그룹 사운드
이 해 발표된 들고양이의 '마음 약해서', '십오야'는 들고양이들 임종임의 폭발적 가창력과 어우러져 79년도에 가장 많이 들려진 노래로 기억됩니다. 이후 '십오야'는 대표적 응원가로도 많이 불렸습니다.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또한 대단한 인기를 얻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연안부두'는 그야말로 단골 메뉴로 등장했고 디스코 세대에는 잊지 못할 추억의 명곡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 캠퍼스 그룹사운드

2회 대학가요제 수상자 가운데 현재까지 활동 중인 가수로는 '그때 그 사람'을 부른 심수봉과 '돌고 돌아가는 길'을 부른 노사연, 그리고 이젠 진행자로 더 유명해진 배철수의 그룹 활주로는 대학 가요제에서 '탈춤'으로 그리고 같은 해 열렸던 1회 해변가요제(2회부터는 젊은이의 가요제)에서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로 내친김에 '이 빠진 동그라미'가 담긴 독집 앨범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 주었습니다. 해변 가요제 수상 곡으로는 블랙 테트라의 '구름과 나', 라이너스의 '연', 징검다리의 '여름', 휘버스의 '그대로 그렇게'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발라드 음악의 정점에 선 '원조' 이광조

발라드 음악이 언제부터 인가 우리 가요의 한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가장 사랑 받는 음악의 중심에 늘 발라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스탠다드, 트로트, 록, 포크, 그리고 등장하는 장르가 발라드였는데, 다른 음악 장르가 대부분 그러하듯 우리 음악의 장르를 어떤 기준으로 규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늘 업계의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80~90년대는 일부 음악에 하이뽕, 세미뽕(뽕은 트로트 음악의 또 다른 의미였던 뽕짝의 줄임 말)이라는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국내에서 생성되고 사용된 용어로서, 주로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 많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대중음악에서 발라드 음악을 본격적으로 부른 가수 많은 사람들은 이광조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한때 해바라기의 멤버로도 활동한 이광조는 80년대 중반 '연인이여',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등으로 발라드 음악의 정점에 서기도 하였습니다. 70년대 후반 발표 곡인 '나들이' 그리고 이어 발표된 '오늘 같은 밤' 등은 이정선의 곡들로 블루스의 색채가 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블루스와 재즈 등 모든 음악을 소화하는 이광조의 뛰어난 음악성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열정과 감동을 그대로!! 실력파 여가수들

가요계 영원한 디바 인순이
늘 무대에 서면 열창하는 가수 인순이, 얼마 전 어느 행사장에선가 인순이의 사인을 받으려 줄을 서던 현역 정치인이 가수 인순이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존경합니다'였습니다. 특별히 이상할 건 없었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때문이라 생각되어서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실버들'을 부르며 희자매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인순이는 이후 '밤이면 밤마다', '비닐 장판 위의 딱정벌레', '거위의 꿈'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펄시스터즈의 배인숙 솔로 데뷔
펄시스터즈배인숙이 부른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는 잔잔한 선율을 따라 흐르는 매혹적인 배인숙의 보컬이 완성도를 한층 높여주며 원곡과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겨주는 곡입니다.

사전심의제도 폐지 앞장선 '포크계의 투사' 정태춘 박은옥

지금은 부부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정태춘박은옥의 독집 앨범이 비슷한 시기에 발매 되었습니다. '시인의 마을', '회상' 등 서정적 포크 음악을 부르던 두 사람은 곧 결혼하게 되고 정태춘 박은옥 두 사람의 이름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초기 정태춘의 음악은 '촛불', '떠나가는 배', '사랑하는 이에게' 등의 노래를 통해 음유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포크에 국악을 접목하는 음악과 사회성이 강한 음악을 부르며 사회의 그늘진 모습과 상대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강한 메시지를 가사에 담게 됩니다. 정태춘의 문화적 업적도 높이 평가를 받게 되는데 대중음악 발전에 걸림돌이었던 가요의 사전 심의제도 철폐에 앞장서 96년에 헌재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아 내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한국 대중음악은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으며 자유로운 창작 활동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창작에 대한 평가는 자율성과 최종 소비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함에도 방송의 자체 심의는 아직도 일부 음악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성을 갖는 방송 특성을 그 논리의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창작은 자율성의 보장만큼 책임 또한 중요하다는 인식도 우선 되어야만 하지만 말이죠. 한때 신인 가수가 자신의 음반을 방송하기 위해서는 방송 관계자 앞에서 오디션을 보아야만 했던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는데, 이는 일부 방송에 국한되었으며 얼마 후 업계의 반발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태춘과 박은옥 부부
발라드의 원조 이광조를 잇는 가요계 최고의 남자 발라드 가수는 누굴까요? 의견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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